눈이 녹으면 봄이 온다는 어느 이의 말처럼.
흰눈백으로 물든 자리에 초봄의 싹이 난다.
가끔 보이던 파란 하늘을 제외하곤 빛바랜 일상처럼 생기 없던 하루에
다양한 색이 조금씩 스며듬을 깨닫는 날.
창가로 드는 햇볕이 유난히 따스한 어느 날.
늘 반복되던 일상에 문뜩 봄이 찾아왔음을 느끼는 그런 날이다.
사무실에만 앉아있기는 아쉬운 날.
거리로 나와 느릿하게 걷는 머리 위로 벚꽃이 내린다.
그 외에는 이름도 모르는 꽃과 나무들이지만 뭐.
한여름의 짙은 녹색과 달리 연옥빛의 여린 잎을 피우는 가지.
좁은 산책로 주위를 물들이는 꽃.
보기 드물게 맑은 하늘과 청록의 향이 나는 지금.
제법 두툼한 외투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에 서늘한 공원.
해바라기 하러 나온 직장인 몇몇이 전부인 공간 속 벤치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는 풍경은 고요하며 소란하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공원을 다시 걷는다.
여느 날처럼 모르고 지나갈 보통의 어떤 날.
나른한 주말 4시가 조금 넘어서 나온 거리.
작은 천을 따라 난 산책로에는 대파처럼 자란 창포며, 잔디 같은 갈대가 그득하다.
쨍한 하늘 아래. 푸르게 물든 길. 짧은 다리,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난관 위에 누운 고양이. 마스크쓴 사람들.
뭐 하나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그런 날.
봄과 겨울의 경계 그 어딘가.
널을 뛰는 날씨에 옷 입기 애매한 시기.
실내보다는 실외를 찾게 되는 그쯤.
선선한 카페에 앉아서 음료 하나 들고 창밖을 바라보기 좋은 시간.
주변에서 예쁘다는 카페를 찾고, 카메라를 챙겨서 나온 길.
1, 2팀이 전부인 평일 오후의 실내.
오래된 목조주택의 냄새, 고가구의 차분함, 나무 창 너머로 뿌옇게 보이는 하늘.
내부 사진 몇 장 찍고 나면 오늘의 목적은 달성.
나머지 시간은 카페 분위기에 묻혀 책이나 몇 장 보다가 들어가야겠다.
강렬하던 햇빛과 스산한 달빛이 교차하는 시간.
늘어선 가로수를 비추는 조명이 난해하다.
고아한 멋 따위는 없이 촌스러운 붉은색, 푸른색 따위의 빛
매해 반복되는 꽃놀이를 맞이하는 무성의함의 극치
차라리 언덕 너머의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다는 순간이 더 운치 있네.
올봄은 이 난장판에 그 촌극을 못 보게 된 것에 고소를 금할 수 없다.